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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 “에메랄드 궁”

겨울이 시작되면, 봄, 여름 내내 열심히 피워왔던 잎을 스스로 떨어뜨려야 한다.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삶을 연장히기 위해서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몸의 일부를 살아남기 위해서 떼어애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나무가 살아가기 위한 숙명이 아니겠는가… 그 파릇파릇한 잎을 뗴어내는 나무의 심정은 어덜까…

박향 작가가 쓴 ”에메랄드 궁“이라는 작품을 접하고 나서 든 생각이다. 자연 속의 식물도 감정이 있다면, 제 몸의 일부를 떼어낸다는 것이 슬플진데,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식을 버려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라… 필자는 아직 미저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책을 접하면서 간접적으로 내가 저런 상황이면 어떤 생각일까 하는 막막한 상황이 앞을 가려왔다.

”한(恨)이 맺힌 인물들, 사회의 음지인 모텔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그들의 이야기“

에메랄드 궁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한(恨)“이 맺힌 인물들이다. 모텔이라는 사회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며, 에메랄드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때, 사랑만으로 유부남 “상만”과 도망쳐 가족과 자식, 젊음, 사랑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채 모텔 카운터를 지키는 “연희”라는 인물, 갑작스럽게 갓난 아이와 함께 모텔에서 장기 투숙을 하게 된 젊은 연인 “경석”과 “혜미”, 반 정신이 나간 채로 몸을 파는 “선정”, 벙어리 투숙객 “수호”, 자식들의 반대를 피해서 뒤늦은 사랑을 꽃피워보기 위해 모텔로 찾아든 황혼커플, 그리고 모텔 주위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정란”, 그리고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희망이 없어보이는 비관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모습“

한 때는, 에메랄드 모텔 꼭대기의 황금돔이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점점 더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질 따름이다.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버텨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관적인 현실 뿐이다.

사회 속의 음지,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희망이 없어보이는 모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인, 낙태, 도망, 불륜 등으로 점철되는 그들의 삶을 하나 하나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어왔지만, 우리가 여태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음지에서 소외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을 배신하고 도망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가슴에는 한을 간직한 채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모습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연희”의 대사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 ”겁이 난다. 망하는 게 겁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 속수무책인 시간이 지나면 마치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음지로 생각되는 모텔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전한 가정을 한번 이루어 보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우리 부모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심했을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소설 속의 317호“

소설 속의 317호는 항상 좋지 않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상만의 전 부인이 찾아와서 상만과 함꼐 사흘간 함꼐 머물던 공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의 전 부인이 자살을 기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벙어리인 수호 역시도 그의 연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고, 이후 그가 자살을 기도하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317호”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아마도 “317”이라는 숫자와 무언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을 해본다.

“모텔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작품을 읽는 내내 감탄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작가가 어떻게 모텔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세세하고도 자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가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여기에 그 장소를 찾을 것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면서,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의미 있는 좋은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한 시대를 반영하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은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그렇 듯하게 꾸며내서 쓰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이러한 글을 써내려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관찰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음지로 취급되는 ”모텔“을 자세하기 그려내고, 그 곳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다양한 사연이 담긴 캐릭터로 그려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이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메랄드 궁 – 제9회 세계문학상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