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하디 작가의 “아내를 위하여(To Please His Wife)”라는 작품은 1893년에 쓰인 작품이다. 오래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지금 보아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 때, 우리나라에는 “막장 드라마”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이러한 막장 드라마의 대표격으로 “아내의 유혹”이라는 작품이 손꼽히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막장 드라마가 유행했다고 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 쓰인 토마스 하디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막장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심과 돈에 관한 욕심, 시기, 질투를 서슴지 않고 벌인다는 것에서 이러한 면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욕망에 사로잡힌 한 여인의 질투심이 불러온 비극“
이 작품은 ”욕망“에 사루잡힌 한 여인의 질투심이 핵심이 되는 작품이다. 모든 핵심 사건은 여인의 질투와 시기로 인해서 벌어진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항해를 마치고 살아서 돌아온 졸리프(Sadrach Joliffe)가 교회로 가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졸리프는 거리에서 에밀리(Emily Hanning), 조안나(Joanna Phippard)를 만나고 곧 에밀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졸리프는 조안나와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되고, 둘은 결혼 약속을 하게 된다. 둘의 약혼에 에밀리가 크게 상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안나는 졸리프와 파혼을 하려고 하지만, 에밀리를 만나러 간 조안나는 에밀리와 졸리프가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질투에 사로잡힌 조안나는 졸리프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에밀리는 레스터라는 부자의 청혼을 받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에밀리는 점점 더 부유해지게 되고, 조안나는 점점 더 가난해지게 된다. 부자가 된 에밀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안나는 질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러한 조안나에게 졸리프는 자신이 장사에는 소질이 없으니 바다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한다. 아내의 승낙을 받아낸 졸리프는 첫 번째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꽤 많은 돈을 조안나에게 벌어오게 된다. 하지만, 조안나는 에밀리의 “부”와 비교하며, 졸리프가 벌어온 돈에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졸리프는 다시 항해를 나가게 되는데, 이때, 조안나에게 조건을 걸게 된다.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항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에 빠진 조안나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지만, 결국 그들을 바다로 내몬다. 결국, 졸리프와 두 아들은 바다로 떠난다.
혼자 남겨진 조안나는 점점 더 생계유지가 어렵게 되고, 예정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졸리프와 두 아들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조안나의 모습이 안쓰러운 에밀리는 조안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고, 조안나의 집에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결국,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조안나는 점점 더 피폐해진 모습을 보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비판주의자이나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토마스 하디와 떼놓을 수 없는 “문구”가 바로 위의 문구이다. 토마스 하디는 스스로를 ”비판주의자이나 염세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개혁에 힘쓰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사회 개혁을 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우회적으로 사회의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 비판적인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받으며,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위선과 허영도 판치고 있었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작품 속에 투영시켜, 사회 개혁에 대한 의지를 태워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은 ”Novels of Characters and Environments”이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은 캐릭터와 환경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소설 작품에서 쓰이는 요소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자연주의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자연주의적 작품의 특징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라는 결정론적인 시각을 갖는다.
결국, 인간의 성격도 유전 중의 하나이고, 우연적으로 제시되는 환경 역시도 환경적인 요인의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기에 대부분 자연주의 문학은 비참한 결말을 가지고 온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연주의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한 문학은 단명하게 되었다.
토마스 하디는 작품 속에서 “인간애 내재한 성격과 환경” 모두가 “내재적인 힘(Immortal Will)”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주를 지배하는 내재의지(Immortal WIll)”에 의해서 환경이 통제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마치 신과 같은 존재이나, 인간의 비극에는 무관심한 신으로 묘사된다.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은 ”통제되지 않은 욕망“이다. 통제되지 않은 욕망은 결국 화를 불러오게 되고, 자신까지도 피폐해지게 만든다.
작품 속에서는 욕망의 화신을 “조안나”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대입해보면, 조안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뒤, 가장 우울한 국가로 소개하며,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만 가득한 나라로 묘사했다. 각 체제와 문화의 장점은 살리지 못하고 단점만 가지고 온 체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상황에서 토마스 하디의 “아내를 위하여”라는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를 위하여(To Please His Wife)”
- 저자 :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 출간일 : 18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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