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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저택 “운현궁”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으로서, 고종이 탄생하여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이다. 현재 조선의 대원군궁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그나마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장소이다.

운현궁의 이름은 서운관(書雲觀, 관상감의 별칭)이 있는 앞의 고개라 하여 운현(雲峴)이라 불렸다. 고종이 즉위하자 이곳에서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하였고, 궁궐과 직통으로 연결되었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태어난 곳”

운현궁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종이 태어난 그 장소는 현재는 운현궁 부지에서 제외되었다. 그 건물은 운현궁의 북동쪽 뒤편에 있었는데, 1966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중앙문화센터가 들어섰다가 현재는 삼성물산이 모델하우스로 쓰고 있는 래미안 갤러리가 자리잡았다.

“규모가 축소된 운현궁”

운현궁 역시도 이곳에 살았던 주인처럼 사연이 많은 장소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등과 같은 옛 궁궐과 마찬가지로 운현궁 역시도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흥선대원군의 권세가 막강했을 때의 운현궁은 오늘날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쓰이는 ‘운현궁 양관’을 포함해서 현재 운현초등학교와 일본문화원까지 포함하여 굉장히 넓은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현재 궁역에 남아 있는 건물“

규모가 축소되면서 건물이 줄어들긴 했지만, 현재 궁역에 남아있는 건물은 아래와 같다.

  • 정문(正門) : 운현궁의 출입문
  • 수직사(守直舍) :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
  • 솟을대문(大門) : 운현궁의 안채인 이로당과 노락당을 출입하는 문
  • 노안당(老安堂) :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이 일상적으로 거처한 곳으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처마 끝에 각목을 덧대어 차양을 설치했다. 노안당이라는 현판은 “〈공야장편〉의 ‘노인을 편하게 하다(老者安之)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이다.
  • 노락당(老樂堂) :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정면 10칸, 측면 3칸이다. 1866년(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중 하나인 친영례와 봉영례가 거행되었으며,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 행사 때 사용되었다.
  • 이로당(二老堂) :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곳으로 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있은 후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할 수 없어지자, 새로운 안채로 1869년(고종 6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정면 8칸, 측면 7칸으로 여성들만의 사적 공간으로 남성들의 출입을 삼가기 위해 건물의 구조가 ㅁ자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등용문이라는 별칭이 붙은 중문”

운현궁에는 문들이 많은데, 노안당과 노락당 사이에 있는 대문채는 등용문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는 대원군을 뵈로 온 사람 중에서 벼슬을 얻은 자는 중문을 통해서 나갔고, 실패한 사람들은 들어올 때 이용했던 솟을대문을 통해서 나갔기 때문이다.

수직사 군졸들은 중문으로 나온 사람들만 정중하게 모셨는데, 이는 대원군과 운현궁에 있던 사람들끼리 주고 받던 사인으로 알려져 있다.

운현궁은 조선후기와 근대사회의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흥선대원군과 고종 일가의 사연이 담긴 곳으로 조선 후기, 근대사의 역사의 숨결을 느겨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서울, 흥선대원군의 주택, 고종의 출생지, 운현궁”

  •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 전화번호 : 02-768-9090
  • 운영시간 : (4월-10월) (화-일) 9:00 – 19:00 (11월-3월) (화-일) 9:00 – 18:00 (입장시간 : 마감 30분 전)
  • 휴무일 : 월요일
  • 홈페이지 : https://www.unhyeongu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