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구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홍예문은 아치형 터널이다. 이는 2002년 12월 23일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인천, 홍예문의 역사”
개항 당시 인천항과 인접한 중앙동과 관동 등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전동과 만석동으로 거류지를 확대하기 위해 뚫은 석문이다. 당시는 일본 조계지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이동할 때 내동과 용동마루턱을 거쳐 화평동을 우회하는 게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통행하기에 불편하였기 때문에 응봉산 남쪽 마루턱을 깎아 홍예문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폭 4.5m, 높이 13m, 통과 길이 13m의 홍예문은 일본 공병대가 1905년에 착공하여 1908년에 완공하였고, 상인천과 하인천을 잇는 도로가 생기게 되었다.
홍예문은 현재까지도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옛날에 설계된 터널이라 자동차가 한대밖에 지나지 못한다. 터널 양쪽으로 반사경을 설치해두어, 운전자끼리 양보하며 한 차량씩 통과하고 있다.
답동성당에서부터 대한성공회 내동성당을 지나, 송학동 일대, 자유공원, 차이나타운으로 이어지는 중구 관광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홍예문 위 도로에서는 남쪽 방향으로 인천내항과,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를 조망할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청라국제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
인천광역시에는 유형문화재 제49호로 홍예문을 지정했다. 아래는 인천광역시에서 홍예문을 소개하고 있는 문구이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다.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石門)으로, 위치는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3가 20이며, 면적은 1,952.6㎡이다.
건설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이 홍예문(을 뚫었는데 일본인들은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공사를 진행할 때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을 만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홍예문을 통과하면 폭이 좁은 2차선 도로가 지나며, 홍예문 위쪽 길에 서면 인천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자유공원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터널이라, 인천 구도심인 중구를 여행하면서 같이 한 번 둘러볼만한 곳이다.
“인천 홍예문”
- 주소 : 인천 중구 송학동3가 8
- 문화재청 홈페이지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1,00490000,23&pageNo=1_1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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